코엑스 페코 애프터눈 티세트

2005년 3월 28일(월)
오랜만에 찌비, 티거 언니랑 코엑스에서 만나서 애프터눈 티세트를 먹기로 했다.
아니, 사실 이 만남을 주선했던 찌비가 어디라고는 얘기를 안 했지만
어찌어찌해서 코엑스에 뭔가 새로운 찻집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거기인 줄 짐작했음.
공항터미널 쪽 커피빈 맞은 편에 생긴 지 2주 정도 된 찻집이랜다. 오호~

여기서 잠깐, 애프터눈 티세트가 13,000원이다!
2년 전엔가 워커힐에서 먹었던 18000원짜리가 젤 쌌는데
(그것도 지금은 올랐음. 게다가 호텔은 부가세 10%, 봉사료 10%가 별도로 붙는다.)
그나마 이대앞 오후의 홍차 애프터눈 티세트(20,000원) 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이 비싼 땅덩이, 코엑스에 있으면서 전문 파티셰도 있고 세팅도 잘 되어서 나오는데
이 값이라면…! 나오기 전부터 설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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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장점은 제과부가 있기 때문에 예약을 안 하고도 애프터눈 티세트를
시켜먹을 수 있다는 점. 다만 이날은 찌비가 예약을 해놔서 우리 자리가 세팅돼 있었다.
그런데 세팅된 테이블을 보고 퍼뜩 떠오른 생각이…
‘어, 호텔식으로 제대로 세팅해놨네. 여기 주인…어떤 사람인 거야?!’
내가 꿈꾸던…언젠가 이런 티세트가 나오는 찻집을 꿈꾸며
테이블 세팅이며 그릇, 매너 등을 공부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선수를 빼았겼구나…OTL
젊은이들이 우글거리는 혈기 넘치는 코엑스에
정통 호텔식으로 세팅된 홍차를 느긋하게 맛볼 수 있다니…
너무 마음에 들고 부러웠다.
어쨌거나 난 세팅된 식기나 모양 등에 자꾸 눈이 갔다.
은도금된 호텔 기물에 통일된 흰색 다구(어디 브랜드인지 모르겠음. 별로 비싸보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싸구려로 보이는 것도 아니고 딱 적당해 보인다.), 냅킨에 냅킨링까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맛본 호텔 애프터눈 티세트 세팅 중
제일 깔끔하고 내 마음에 들게 통일감을 주어 정성껏 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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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애프터눈 티세트 먹으러 갔을 때 한 세트 시키고 홍차를 한 포트 추가해서
둘이서 반씩 나눠먹던 게 감질맛 났던 기억이 나서
이번엔 아예 각자 한 세트씩 시켰다.
위풍당당한 저 케이크 스탠드의 모습이라니.. 기분 좋기도 하지. 홋홋
딱 내가 좋아하는 모양에 크기도 적당한 케이크 스탠드다.
내가 갖고 있는 건 27cm 정도의 디너 접시만 올라가는 2단짜리 큰 것인데
이건 디저트 접시..21cm 정도가 올라갈 만한 크기인데다 3단이다.
너무너무 마음에 든다. 혹시 파시지 않냐고 했더니 나중에 팔려고 계획중이시랬다…
나중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_-; 이런 케이크 스탠드 어디서 파냐고 했더니
좀 쌀쌀맞게 응대하던 C호텔보다는 훨씬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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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사바렝이랑 치즈케이크, 딸기생크림무스 케이크…
사바렝은 안 먹어봤는데..서양골동양과자점에 나왔던 기억이 난다.
아, 페코의 또 하나의 장점 중 하나가 애프터눈 티세트에 나오는 케이크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 물론 홍차도 선택 가능하다.
난 슬며시 걱정됐다.
어디는 애프터눈 티세트 나올 때마다 메뉴가 바뀌는데다
홍차도 선택에서 고정으로 바뀌고 케이크는 커녕 스콘도 안 나오고 그랬는데…
여기는 스콘도 2가지나 나오고 케이크도 선택할 수 있다니.
이러고도 이 강남 땅에서 장사 되겠어요?라고 묻고 싶었다.-,.-a
제발 이대로…나빠지지 않기를…
나중에 수익 안 난다고 이리 빼고, 저리 빼고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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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포도 스콘과 얼그레이 스콘.
여리지만 향긋한 얼그레이 향이 풍기는 따뜻한 스콘과
생크림, 잼이 함께 나온다.
여기는 왜 이렇게 탐나는 다구가 많은 건지…
은도금 된 버터나이프나 냅킨링도 탐났지만
이 잼이 담겨있는 용기도 탐났다. 시중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좀 달리
면적도 별로 안 차지하게 오목한 모양에 용량도 적당하고 넘 마음에 드네. 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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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접시에는 샌드위치.
애프터눈 티세트에 나오는 핑거푸드 치고는 크지만
오히려 이런 푸짐함이 한국인 정서에 맞는 것 같다.
10종류의 다양한 핑거푸드보다
종류는 좀 적어도 적당히 볼륨감 있는 게 더 좋네.
오른쪽에 보이는 흰 티코지는 페코에서 직접 주문제작한 티코지이다.
면은 아니고…바삭한 질감의 천인데…하단의 레이스도 귀엽고
흰색 천에 페코 로고 자수까지 있어서 다구와 함께 일체감을 더해주면서
호텔 같은 고급스러움까지 느껴진다.

가격은 마음에 드는데 다과 종류는 좀 적은 편이다.
하지만 이 정도 가격에 홍차랑 케이크, 스콘에 샌드위치가 나오는 건
세팅돼 나오는 수준이나 차, 다과의 맛 등을 고려해 볼 때 비싼 건 아니라고 본다…
아무리 맛이 좋아도 세팅이나 다구가 마음에 안 들면…좀…
집에서도 마실 수 있는 차를 굳이 밖에서까지 나와서 마시는 이유는
서비스 좀 받아보고 싶고 친구들과 분위기를 만끽하고자 하는 점도 있는데
그거 무시하고 싸게 먹는 게 과연 맛도 좋을지는 의문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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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그레이 향이 연하게 풍기는 가운데 따뜻할 때 반으로 갈라먹으면
그 식감과 향이 너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역시 스콘은 반으로 갈라서 잼이랑 생크림을 듬뿍 발라 앙~하고
한 입에 먹어야 제맛이쥥~
생크림이나 잼이 떨어지면 더 주니까 듬뿍 남기지 말고 발라먹을 것.

그나저나 저 버터나이프…통통한 손잡이에 은도금 특유의 광택,
호텔 기물 특유의 가벼움^^; 등등 어쨌든 넘 마음에 든다.
덕분에 또 버터나이프에 버닝해서 이베이까지 뒤져봤네.
하지만 뭐 집에는…예전에 산 귀여운 일제 버터나이프가 있고
이 기물들은 국내에서도 살 수 있으니 자제해야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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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다케 젠플라워 잔이랑 티포트…이쁘긴 하지만
내가 별로 좋아하는 건 아니라서 홍차 리필할 때 티포트를 바꿔달라고 했다.-_-;
그리고 내가 세트에 무척 집착한다는 것을 이때 또다시 느꼈다. 후후
이왕 티세트 먹을 거면 다 통일했으면 했거든..
아, 이날 내가 마신 홍차는 오렌지페코.
그런데…흠..이상하다…왜…. 오렌지향 감기약 향이 느껴지는 건지.-_-;
차맛은 너무 진하지 않고 나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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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로 주신 비스코티와 트윌, 쿠키 등등.
바삭하니 너무 달지도 않고 정말 맛있다.-,.-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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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내부를 찍는 것을 허락해주셔서 신나게 찍고 놀았는데
코엑스답지 않게 앤틱하게 꾸미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입구에서 왼쪽에 있는 장식장이다.
사장님이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오셨다더니… 그쪽에서 가져오신 물건이려나.
나도 저런거 있으면 이쁜 티포트로 장식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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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티포원이 있어서 찍어봤다. 판매예정이라고 하니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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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왼쪽에 있는 테이블.
가게 밖에도 테이블이 하나 있어서 약간 노천카페 느낌도 난다.
뭐 햇빛 하나 들지않는 코엑스에서야 어쩔 순 없지만
그래도 공간에 하나하나 의미를 주려고 한 것 같아서 참 특이하다…란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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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안쪽 대부분의 좌석은 저렇게 벨벳을 씌운 의자이다.
단점은…테이블이 넘 작다는 점. 저기서 차 마시다가 떨어뜨리면 어쩌려구.

메뉴는 기본적인 홍차들로 구성된 정도이다.
그래도 밀크티랑 바리에이션티들이 좀 있고…
6~7000원선으로 강남에 있는 세떼비앙, 데자미, 플레쥬로보다는
비슷하거나 낮은 편인 것 같다.
홍차는 영국에서 수입한 세인트제임스 홍차.
여기 홍차는 정말 국내에서 인지도가 낮아서 의아해했는데
포시즌이라는 유명한 호텔에서 쓰는 홍차라고 하네.
들여온 지 얼마 안 돼서 찻잎도 신선하고
100g캐디뿐 아니라 50g 리필팩에 25g 미니틴까지 판매 예정이다.
25g 미니틴까지… 정말 제대로 준비했다는 인상을 강렬히 받았음.
진열대에 판매를 준비중인 몇몇 다구도 이쁜 거 많았구…
앞으로 티코지나 가게에서 쓰고 있는 그릇, 식기도 같이 팔 예정이라고 해서
무척 기대하고 있다.
차맛도 그럭저럭 괜찮고 다과는 너무 마음에 들고
샌드위치도 풍성해서 정말 좋았다. 단, 먹기좋게 한 번만 더 잘라주면 금상첨화.
샌드위치가 저렇게 큰게 3개나 나오는 것보다 크기를 줄이고 쿠키를 더 넣어서
종류를 약간 더 늘리면 어떨까 모르겠네. 그럼 진짜 구색이 딱 맞을텐데.
아, 우유도 같은 디자인의 다구에 나온다.
이게 뭐야..할 수도 있지만 나 같은 사람은 좀 따지는 부분이다.^^;
그리고 뭣보다 우유 같은 게 따로 안 나오는 찻집이 더 많구
우유 요만큼 따라주면서 돈 더 받는 곳도 있다보니(차라리 한 팩 사들고 들어가겠다!)
차야처럼 우유를 적당히 담아서 데워서 내오는 곳이 또 있을 줄은 몰랐거든…
(다른 데도 있다고 하면 거긴 내가 안 가본 곳이다.)
아참, 또 하나…이런이런 너무 주절주절 떠드는 감이 있긴한데
차야 이후로 이만큼 흥분해보기는 또 이번이 처음이라…후훗
설탕이..유기농 설탕이다. 이건 뭐 재고 다 떨어지면 백설탕으로 바뀔 수도 있는 부분인데
딱 설탕 입자랑 색깔 보고 요원님 가게에서 본 유기농 설탕이랑 같다..했더니
그 비싼 유기농 설탕을 채워놨다니. 쿨럭
처음이라 너무너무 잘해놓은 것일 수도 있다…
나중엔 조금씩 퇴색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게 애쓰고 그 모습이 보인다면
앞으로 친구 만날 땐 코엑스에서 만나야 할 듯.ㅎㅎ
아직 알려지지 않은데다 낮에 비즈니스 손님 때문에 금연을 할 수가 없었다는데
전석 금연이 실현되면…
지금까지 차야 다음으로 어디!하고 추천해왔는데 이곳이 그곳이 될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가게의 기준은
첫째가 금연이고 둘째가 서비스고 셋째가 맛, 넷째가 화장실이거든.
맛이라는 건… 아주 황홀할 지경이 아니고서야…
첫째, 둘째 요소가 많은 영향을 끼치다보니 현재 내 기준은 이렇다.
화장실은 건물 화장실을 같이 쓰기 때문에 그냥 그런 수준이다.
하지만 화장실이 더럽거나 기껏 예쁘게 꾸며놓고는
세면대가 고장나고 휴지통에 휴지가 넘쳐나는 것보다는 낫다.
어디 갔다와서 이렇게 흥분하는 게 쉽지 않은데
오랜만에 어디 느긋하게 차 한 잔 마시기 어려운 코엑스에
이런 오아시스 같은 홍차점이 생겼다니 무척 흥분되고 있다.

p.s.: 내가 운이 좋았던 것이…역시나 걱정했던대로 애프터눈 티세트…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함. 가격은 16,000원으로 인상됐다고 함.
그리고 이날 갔을 땐 찌비가 아는 사람이라 샌드위치가 좀 크게 나왔다고 한다.^ㅂ^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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