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7일 교토 기온

여행한 지 일주일이 되니 정말 피곤했나 보다.
도쿄에서 침대에서 잘 땐 쉽게 잠을 못자던 친구나 나나
오사카에선 바닥에서 자는데도 푹 잘 자게 되고
버스 뒷줄에서 곯아떨어졌다가 눈을 뜨니 5시 반이나 되었다.-_-;;;
기본 요금이 220엔이고 구간이 증가하면 요금도 오르는가 본데
간사이 패스로 자유롭게 여행하고 요금 부담이 없으니 그건 좋군.
어쨌든 어랏? 하고 내려보니 한큐 백화점이 보인다.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이미 기요미즈데라도 닫았을 시간이고
일단 백화점 구경이라도 하자고 들어가서
친구는 옷, 난 지하매장을 보고 6시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는데
그 백화점에는… 식품 매장이 없고 순 옷뿐이더라구.
같이 1시간쯤 옷 구경을 하다가 나왔는데 이제 남은 것은 기온 거리뿐.
어디인지 모르니 아무 버스나 탈 순 없고 어떤 친절해보이는 아줌마가 지나가길래
붙잡고 물어봤다.
저~기 보이는 모퉁이를 오른쪽으로 돌면 기온이라나…
그렇게 해서 찾아갔지만 또 미심쩍어서 무슨 꽃집이었나 거기 아줌마께도
물어봤더니 막 웃으면서 이 근처가 전부 기온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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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찾아보니 기온이란…
카와라마치 역 근처에 보이는 시조오하시(四條大橋)에서부터
대로 끝에 보이는 야사카 신사 앞까지 정면의 대로를 따라 펼쳐져 있는 동네 일대란다.
그런데 고죠 다리도 아닌 시조대교지만…
저번에 지브리 미술관에서 느꼈던 그 전율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아아..눈물이 날 거 같아..짝퉁 고죠 다리라고 해도 좋아
이 교토, 기온 거리를 걸을 수 있다니…T^T
이럴 줄 알았으면 오기 전에 龍이나 다시 독파하고 올걸.
고죠 다리 말고도 무전학교도 어디인지 한 번 찾아볼걸. 흑흑
뭔가 그 주인공이 이곳에 살아숨쉬고 있는 것 같아서 더 아련하고 기뻤다. 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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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오하시에서 내려다보이는 강 풍경.
강변엔 각종 음식점이 저~기까지 즐비하다.
쿄료리 4500엔부터! 뭐 이런 플래카드가 걸려있고… 저녁은 여기서 먹으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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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기 전인가 후인가 가물거리는데
카와라마치 역 근처에 특이한(연예인이 아닐런지) 동상 아래에 밴드가 공연하고 있었다.
나중에 숙소에 돌아갈 때 보니 밤인데도 계속 공연을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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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를 보니 노 공연장 같은데… 저 규모로 볼 때 분명 유명할 거 같은데
아는 바 없음.

교토에 대한 관광정보를 더 뒤져보다가 여기가 교토에서는 그렇게나 유명하다는
미나미자(南座) 극장이었다. 6개인가 있었는데 이거 하나 남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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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쿠사에서 나카미세도리를 재미있게 돌아다녔다면
이 기온 거리를 거니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인사동 돌아다니는 느낌이랄까.
전통 공예품, 화과자점이 즐비하다.
웬 호떡집에 불난 듯이 손님이 바글거리는 당고집도 있었는데 그걸 못 먹어봤지 뭐야.
화과자점이 너무 많으니까 오히려 고르기가 더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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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 거리 일대가 다 전통적인 가게 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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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 끝에 있는 야사카 신사. 그냥 길 건너에서 사진 찍고 끝.
날이 저물고 시간은 8시가 다 되어가고 가게들도 계속 문을 닫는다.
여기까지 쭉 걸어오고 다시 시조오하시쪽으로 걸어가면서
어떤 가게인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다도용 카이시랑 설탕가루 뭉쳐서 만든 화과자, 농차용 말차를 구입했다.
그 가게 안에서 마음에 드는 6천엔짜리 라쿠 다완을 발견했는데
약간 금이 가 있는 것이다… 금이 안 가고 좀 더 좋은 건 9천엔.
그걸 놓고 한참 고민을 하다가 결국 못 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되네.
다른 가게에선 다완을 넣을 작은 주머니를 하나 더 사고
저녁… 특히 교토라 하면 유명하다는 쿄료리(京料理)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이 골목 저 골목 돌아다녔지만 마땅해 보이는 식당이 이상하게 안 보였다.
그냥…난…아까 봐둔 그 시조오하시 주변의 식당 아무데나 들어가면 될 거 같은데..
쇼핑할  때에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거 싫어해서
같은 품목이면 두세군데 돌아보고 끝내다보니 찾기가 귀찮아졌다.
결국 시조오하시 뒷편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서 강이 보일 만한 식당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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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 올라가기 전에 쇼윈도에 모형음식들이 있어서 그걸 보고 정했는데
회도 몇 점 있고 이것저것 가장 무난해보였던 효우탄 벤토,
친구도 같은 것을 시켰다.(2,940엔)
흠… 일본 식사 예절 중 밥공기 들고 먹는 건 잘 안 되지만
국은 어쩔 수 없이 들고 마시게 되고
저렇게 종이에 넣어서 나오는 나무젓가락은 쓰고 나서 다시 종이집에 넣어두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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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아기자기하고 이뻐서 먹기가 겁나네.
그다지 비싼 가이세키 요리 같은 것은 아니지만…
마음 먹고 이만큼 써서 먹는 것이라 기대만빵.
먼저 회부터 한 점씩 먹었다. 초밥은 못 먹었지만 이거라도…

왼쪽 위부터 무슨 반찬인지 회상해보자면…
분홍색 물을 들인 흰색 조각은 어묵이었고
그 옆은 우엉을 넣고 말은 달걀말이였던가?
단호박을 쪄서 생선을 얹고 눌러서 초밥처럼 생긴 것도 부드럽고 맛있었다.
무슨 묵 같은 것을 감싼 것이 있는데 겉에 싼 것이 도대체 뭔지는 모르겠다.
비릿한 냄새가 나는게 얇게 저며서 말린 무슨 생선 껍질 같기도 하고…
계란말이 2개는 내 기대와는 달리 단맛이 나는 건 아니었고
생선 2마리를 통째로 놓은 건… 머리와 꼬리를 떼고 먹었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것은 바로 저 레몬.
레몬 슬라이스를 또 반으로 갈라서 그 사이에 연어알을 집어넣은 것이다.
연어알이 레몬에 감싸인 상태로 그 향을 흡수해서
신선한 레몬향에 찐득한 즙이 터져나오는 신선한 연어알…
연어알은 5학년 때 어쩌다 맛본 이후로 이번이 두 번째인데 그때와는 당연히
입맛이 변한 것도 있지만… 비교가 안 되게 맛나는구먼.
더 좋은 요리에 나오는 건 더 맛있으려나… 어쨌든 한알한알 톡톡 터뜨려 먹으면서
밥과 같이 먹었다.
가운데 작은 흰종지에 들어있는 것은 무슨 해초 같은 것을 식초 푼 물에 담근 것 같은데
물컹물컹 미끈해서 잘 안 잡히다보니 그냥 종지를 들고 후루룩 마셨다.

옆에 있던 뚜껑이 덮혀있던 요리는 채소 조림.
흰색에 각이 잡힌 저것은 토란.(토란 무척 좋아한다)
노란 것은 단호박. 그리고 껍질채 먹는 콩과 삶은 문어를 조린 것이다.
너무 진하거나 짜지 않게 잘 조려져서 맛있다.

오른쪽에 있는 회는 흰살, 붉은살이 2점씩 그리고 신선한 와사비와
흰두부가 한 점 있었다.
먼저 두부를 먹었는데 담백하니 부드럽게 입안에서 사르르 부서진다.
와사비는 간장에 풀기 전에 살짝 맛봤는데 상쾌하게 코를 찌르고 사라지는 그 여운과
약간 아삭거리는 식감이 가루 같은 것으로 만든 게 아니라 생와사비를
갈아서 내온 것 같다…(그냥 짐작에-_-)

국은 맑은 미역국을 간을 한 것 같고 위에는 두부와 어묵 같은 게 떠 있다.
국그릇을 들고 마시면서 젓가락으로 건더기를 건져먹는다.

그런데 특이하게도…흠..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것은
바로 가운데 있는 채소절임!
오이랑 또 이름을 알 수 없는…저 자주색 나는 것이 그렇게나 맛있더란 말이지. 하~
오이는 아삭거리는 식감이 무척 잘 살아있는데 숨이 알맞게 죽어있으면서
짜지않고 오이향이 잘 살아있는 맛이었고
자주색의 저것은 새콤달콤하면서 꼬득꼬득 아삭하니 씹히는 그 식감이 너무 맘에 들었다.
난 채소 요리를 먹을 때 향과 식감에 민감해서 향이 좋거나 강한 것과
아삭거리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데… 이것들이 여기에 잘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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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테이블에 앉으면 서로 마주 보도록 앉지만
친구랑 나는 야경을 구경하기 위해 나란히 앉아서 먹었다.ㅎㅎ
요리를 다 먹고 나자…오밀조밀 양이 적어보였어도 배가 꽤 찬다는 점.
뭔가 강렬한 맛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배가 그득히 차면서 입안이 찜찜하지 않고
재료를 살리려고 애쓴다는 그네들의 요리의 한 면을 맛본 것 같다.
뭣보다 짜고 매운 걸 싫어하는 나한테는 너무너무 잘 맞는다는 거지.
찌개를 안 좋아하다보니 약간 밍숭맹숭할 수도 있지만 이런 요리가 더 좋다.
제대로 된 가이세키 요리를 꼬옥 먹어보고 싶네.
우리 옆 테이블에는 어떤 여자가 혼자서 냄비 요리를 시켜서 책을 보면서 먹고 있었다.
그것도 꽤 양이 많은데 혼자서도 잘 먹더라고.
일본여행시 편한 점. 혼자 밥먹는 사람이 많아서 어색한 게 없다.
도쿄의 경우 바에 일렬로 앉아서 먹을 수 밖에 없는 식당이 많다 보니
아무데나 들어가서 먹기도 좋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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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가 폐점이라고 해서 얼른 먹고 내려와서 쇼윈도를 찍어보려고 했더니
그새 또 다 꺼놨네.
요리는 1800부터 4000엔 정도 가격대이다.
2000엔 아래는 튀김도 있지만 회는 없고 내용물의 종류도 적고
우리가 선택한 게 중간 정도 가는 것이다.
어쨌거나 맛있었어…
제대로 맛있다고 소문난 집에 가서 먹으면 또 얼마나 맛있을까.

바로 앞에 카와라마치 역이 있다.
거기서 한큐 선 급행을 타고 9시 18분에 출발해서 우메다(390엔)까지 온 다음
다이코쿠쵸에서 요츠바시 선으로 갈아타 하나조노쵸까지 오니 10시 반쯤 되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위해 패밀리마트에서 쇼핑을 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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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숑 애플티가 음료로 팔길래 하나 사봤고
이 민박집은 음료수를 따로 끓여주진 않고 수도꼭지에 달린 정수기에서 받아마시면
된다고 하는데 미심쩍어서 스포츠 음료를 한 병 샀다.
하이디가 그려져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구르트랑
아침 식사 후에 먹을 디저트로 푸딩,
신라면 컵라면만 달랑 먹으면 허전할테니 매실을 썰어넣은 주먹밥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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