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케키야 애프터눈 티세트(폐점)
9월 3일
한남역에 새로운 홍찻집이 생겼단 정보를 입수한 후
계속 가고 싶어하던 참에 윰 언니랑 갔다왔다.
한남역은 출구가 하나뿐인 고즈넉한 동네.
아파트 단지만 눈에 띄고 고층건물도 별로 없는데
이쪽이 부촌이란 소리를 들어서… 과연 그런가 싶을 정도로
썰렁해 보인다.
그런데 뭐랄까… 역을 나서는데 개찰구 통과하면 바로 야외 출구인 점이
도쿄 하라주쿠랑 같은 게 아닌가.
눈앞에 그때 그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갑자기 또 일본에 가고 싶어졌다.-_-;;;
하여튼 흔한 구내매점 하나 없이 출입구와 개찰구만 있는 지하철역을 나와
그대로 큰길을 따라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주유소가 나오는데
주유소 바로 옆이 케키야다.
들어가기 전에 둘다 정신없이 사진 찍고…
kekiya라 함은 케이크 가게라는 얘기인지?
일본어에서 や는 屋·家를 나타낸다.
생선가게면 사카나-야라고 하구. 그러니 케이크 가게(장수)라는 게 아닐런지.
어쨌거나 야외 테라스도 있고 유리로 훤하게 자연광이 비치게 해놓은 게 마음에 드네.
위치가 썰렁한 대로변에 있어서 좀 이해가 안 되지만서두.
카운터 바로 앞에는 아이스티 샘플과 판매용 쿠키 같은 것이 진열돼 있다.
아이스티는 공짜로 맛볼 수 있는 것인데다
레피시에 모모라길래 맛봤는데..으음.. 좀 쓰네.
메뉴판을 가져다주는데
오호라~ 돈 좀 들였는데…라는 생각이 불쑥.
가게 외관, 간판도 중요하지만 내부에서 그 간판 역할을 하는 게
메뉴판 아니겠는가?
가게에서 파는 음식들에 대한 정보가 담긴 것인데 중요하지 않겠냐고.
메뉴판이건 카운터에 붙이는 가격판이건
제때제때 업데이트 하고 설명이 잘 돼어 있으면
가게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하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니겠냐고.
게다가 난 메뉴판에 돈을 들였던지 정성을 들였던지
뭔가 ‘티’가 나는 것이 좋다.
아이디어와 정성이 있으면 돈이 많이 들지 않아도
튀는 메뉴판을 만들 수 있는 거 아닐까?
몇 년 전엔가 교보문고 일서코너에서 봤는데
일본의 유명 카페들 메뉴판과 그 메뉴판 만드는 방법을 소개한 책이 다 있더라구.
대학로 차야에선 그냥 저렴한 메뉴판이긴 했지만
메뉴판 업데이트를 제때 하고 처음 오는 손님들이 많이 물어볼 만한 것은
종이 한 장에 빼곡히 설명해서 코팅한 걸 끼워서 냈었다.
대구 티플라워는 손으로 그린 예쁜 그림으로 인도 지도도 그리고
산지별 홍차를 고를 수 있게 했던 기억이 나네.
이대 티앙팡은 내부 메뉴 종이는 엠보싱지에 잉크젯 프린터로 출력해서 제단하고
겉의 표지는 하드보드지에 천을 씌워서 앤틱한 가게 분위기와 맞추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였더랬지.
메뉴판 얘기가 나오니까 더 생각해 보자.
처음 어느 가게를 간데다 홍차에 전무한 상태인데
마침 가게도 손님이 많아서 바쁘고 이 메뉴가 뭔지 물어보기도
애매한 상태라면?
이때 메뉴에 한 줄이라도 설명이 돼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리고 기껏 어렵게 메뉴를 골랐더니 그건 없어진 메뉴라고 하면
또 허탈해지지.
점원이 바쁘게 건넨 메뉴판이 너무 오래 돼서
코팅이 너덜거리면 또 기분이 어떨까?
난 인테리어나 다구나 돈 혹은 정성을 들인 티가 나는 걸 참 좋아하는데
다른덴 다 돈 쓰고 메뉴판에 소홀하면 그건 정말 이해가 안 되던데.
하여튼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가게라 해도
내구성 있는 메뉴판 재질에 깔끔한 구성이 꽤 마음에 들었다.
카운터 옆 코너엔 판매용 홍차가 진열돼 있고
벽면엔 몰딩으로 액자 코너 같은 것도 만들었네.
여기서 보이는 딱 하나 단점은…물은 셀프.-_-;
손님이 붐비는 것도 아닌데 웬 분식점처럼 물은 셀프란 거지..
처음에 메뉴판 가져오면서 물을 서빙해줄 줄 알고 그냥 앉았다가
물 좀 주세요 했더니 물은 셀프라고 해서 순간 놀랐다.
하긴 스타벅스 같은덴 그렇게 하긴 하지만…
그래서인지 홍차도 알아서 우려마시라고 나오네.
모래시계랑 같이 나오는 점은 티포투랑 같고.
차이는 워머를 준다는 거.
우린 애프터눈 티세트를 시켰는데 2인이 14000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각 14000원인지 정말 둘이 14000원지 궁금했는데
2인데 포트 하나 선택 케이크 2개, 쿠키들이 나온단다.
오오, 그럼 각자 따로 시켜먹는 것보단 이게 낫네?
단, 홍차 양이 적다.
언니께서 몸이 좀 안 좋으셔서 홍차는 많이 안 드신다고 해서
그냥 시키긴 했지만…
미안하게도 홍차를 내가 골라버렸는데
레피시에 MUSCAT다. 청포도향이 난다고 들었는데
정말이지 어렸을 때 먹었던 연두색 청포도맛 쭈쭈바..바로 그 맛이 난다.-0-
그리고 식어도 맛있고…달달하니 청포도 냄새가 물씬.
양은 대충 보니까 400ml쯤 나오는 거 같다.
언니랑 한 잔씩 따르고 남은 반 잔 정도를 내가 마셨으니.
커피 위주의 카페인지 잔도 커피잔에 맞춰져 있는 게 약간 아쉽다.
내가 고른 케이크는 얼그레이 케이크.
언니는 커피 무스 케이크였던가…?
얼그레이 케이크는 코코아맛도 좀 나면서 홍차맛이 나는듯 했는데
강한 건 아니고…으흠 무스 부분이 그래도 입에 맞네.
커피 무스 케이크는 치즈도 들어간 건데 이상하게 남겼다.
샌드위치는 내가 좋아하는 취향..
빵이 질긴 것보다 좀 얇은 식빵이 좋더라구.
다만 티 샌드위치는 핑거푸드로서 먹기 좋았으면 좋겠는데
어딜 가나 양상추가 들어가서 우수수 떨어지는 건 좀…
쿠키는 파삭하고 쫄깃한 감촉이 느껴지는게
코코넛 가루를 넣은 게 아닐까도 싶다. 쿠키는 정말 마음에 들었음.
홈메이드풍의 각종 케이크와 타르트를 판매중이다.
일단 어디서 납품받는 게 아니라 가게에서 직접 만들어서 파는 케이크라고 하면
뭔가 그 정성(?) 때문에 더 호감이 간다고나 할까.
문제는…흠… 내 취향의 케이크가 별로 없었다는 점이겠지.
좀 밋밋한 감이 있긴 하지만 티케이크는 또 화려한 게 아니니까…
홍차양이 적어서 워머는 없어도 될 것 같은데 그냥 보기에 분위기는 살아보이기는 한다.
다만.. 홍차는 이미 다 마셨는데 손님들이 워머를 계속 켜놨다가
찻잎에 배어있던 물이 다 쫄아서 안에서 타기라도 하면?
그 정도로 뭉개고 앉아서 마실 손님은 없을까?^^;
그냥 뭐… 관리하기 힘들진 않을까 하는 쓰잘데기 없는 걱정이 슬쩍 드네.
물은 셀프에서 놀랐는데 그건 홍차전문점만 다니면서 그 서비스에 익숙해진 것이고…
가게 위치가 생뚱맞긴 한데 자연광이 쫙 들어오는 건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흐음… 내가 한남동까지 갈 일이 얼마나 생기겠냐는 거지..-_-;
그 주변 주민을 대상으로 한 것인지도..
이런… 여기 얼마 전에 폐점했다고 한다.-_-;